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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와 커피™ ]
[ 바람기억 ]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 하나 떠 올려 본다 나에게로 불어오는 바람 이었다 [ 내셔널지오그레픽에 소개 되었던 라자스탄의 할아버지 삼총사 ] - 라낙푸르 여름궁전 호텔의 수문장 싼타할아버지 - - 사다르가르 궁전호텔의 수문장 할아버지 - - 조드푸르 메헤랑가드 성의 물담배 피우시는 할아버지 -
봄 축제의 벚꽃구경은 인파로 북적거리는게 싫어서 호젓한 산길에 핀 야생화를 보러 갔던 날에 청초하고 앙증맞은 민낯의 꽃을 만났습니다. 비록 여리지만,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고 진하지 않은 모습이, 겸손하게 느껴지는 들꽃. 금년에도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고 행복했네요. 도란도란 봄소식을 전해주던 그 꽃들을 추억해 봅니다.♡ ▲ 얼레지 ▲ 중의무릇 ▲ 애기괭이눈 ▼ 흰괭이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2009년 부터 6년 가까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마치 일기를 쓰듯이 달려왔으니, 이젠 휴식도 필요하고, 블로그도 변화가 필요한때라 여겨 지네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블로그 일체를 시즌1로 묶어서 마감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사진 보아주셔서 감사드리고, 격려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아울러 좋은글과 사진으로 저를 반겨 주셨던, 이웃 블로거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새해에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큰 변화를 앞두고 있으므로 블로그 컨셉이나 운영방식 등을 바꿔서 사진작업의 내적성장에 치중하려 합니다. 저는 2015년 1월에 [담배와 커피™ – 시즌2]로 돌아 오겠습니다.♡
그냥 멍하니 그 비를 바라보고 있었죠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것 같아요. 나는 또 이렇게 한해를 건너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바람조차 내 삶의 큰 모습으로 와닿고 내가 아는 정원의 꽃은 언제나 눈물빛 하늘이지만, 어디에서든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는 잊혀질 수 있다. 사랑으로 죽어간 목숨조차 용서할수 있으리라. 사랑을 하며 산다는 건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보다 더 큰 삶에의 의미를 지니리라. - 의미 中에서 | 서정윤 -
바다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에는 원망도 많았었지요. 모진 말을 쏟아내도 다 받아주었던 나만의 바다. 이제는 묻지 않아도 희망이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바다... 한해를 마무리 하며 돌이켜 보니, 바다는 내가 버틸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난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가 좋더라 욕설 같은 바람이 얇은 옷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앞쪽은 젖은 옷처럼 찰싹 붙고 그 뒤쪽은 불룩하게 헐렁한, 마음이 바람의 날을 벼리고 있잖아 절규하며 날뛰는 힘을 견디며 파랗고 날 샌 노래를 부르잖아 봐, 깊게 사랑했던 마음이 들끓을 때 당신이기에 어느 한 가슴이 가장 먼저 울 수도 있지 저기 망망대해를 펼쳐두고 출렁임을 그치지 않는 당신의 침묵이 폭풍우가 되는 바다가 참 좋더라 폭풍우에 스민 울음소리가 들리잖아 나를 부르는 웃음소리가 ..
아버지, 또 한해가 지나 가고 있습니다. 그래요, 돌이켜 보니 어떤날은 길을 잃고 앞이 하나도 안보이던 때도 있었네요. 이렇게 사는게 맞는것일까? 이렇게 살면 뭐 해? 사는게 참 부질없다.... 그런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터널의 끝이 꼭 있을거라 믿으며 묵묵히 걸었지요.♡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웠다고, 비로소 가만가만 끄덕이고 싶습니다. 황금저택에 명예의 꽃다발로 둘러 쌓여야만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길지도 짧지도 않았으나 걸어온 길에는 그립게 찍혀진 발자국들도 소중하고 영원한 느낌표가 되어주는 사람과 얘기꺼리도 있었노라고 작아서 시시하나 안 잊히는 사건들도 이제 돌아보니 영원한 느낌표가 되어 있었노라. 그래서 우리의 지난날들은 아름답고 아름다웠노라. 앞으로도 절대로 초조하지 말며 순리로 ..
쌀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의, 가장 빛나는 유산으로 여기며 제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건, 아버지의 소소한 일상이 적혀 있는 작은 수첩 하나와, 생업으로 사용하시던 '됫박' 입니다. 시골 5일장을 다니시며 곡물 도소매를 하셨던 아버님이 쌀 가게를 열어서 이걸로 한말, 한되, 반되... 손수 사용하시던 물건이라 가끔씩 꺼내어 놓고 보면서... 여기에 수백번 수천번도 더 닿았던 아버지의 손길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버지의 일생을 지금 생각해보면, 눈을 돌려 여유 한번 누려 보지도 못하시고, 자식들 공부시키느라고 취미생활 하나 없이, 우직하고 묵묵하게 오로지 앞만 보고... 일생을 소처럼 일하시며 최선을 다하셨던것 같아요. 쌀집 아들로 살았지만, 점점 기울어저가는 집안 형편 때문에 철부지 시절에는, 아버지 같..
유년시절의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느껴지지요. 마음속의 일기장처럼 간직하며, 잊지못하고 마냥 그립게 생각되던 그곳에 가 보았습니다. 오랜시간이 지나서 동네 모습은 많이 달라젔지만,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성공회 건물은 다행스럽게도 남아 있더군요. 집에서 가까웠던곳이라 여기 성공회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참 많이 놀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마당이 이렇게 작았던걸까요? 그때는 무척 크게 느껴젔고 여기에서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건물로 뒷켠에 물러 나 있지만, 여기저기 살펴보고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서 추억의 시간속에 머물다 보니, 되돌아 나오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우리동네에서 제일 크고 반듯한 건물이었었는데, 이젠 세월이 흘러 십자가도 부러진 모습이고... 창고 겸 다용도..